[우리 역사의 비어진 부분] ‘조선정판사 위폐사건’ 독립운동가 이관술 선생, 재심서 무죄 선고 https://www.khan.co.kr/article/202512221133001/?utm_source=twitter&utm_medium=social&utm_campaign=sharing ***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 교수 “김동춘 성공회대 명예 교수 : 이관술 무죄, 나는 사회주의 독립운동가 노동운동가 이관술에 대해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잘 알고 있었으나, 진실화해위 활동 이전에는 그가 전쟁직후 대전형무소 수감 중 산내에서 학살되었을 것이라고는 상상하지 못했다. 그 정도로 우리 학계에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의 해방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나는 그의 학살사실을 알게된 무렵에도 울산에 그의 자손들이 살고 있을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는데 그 무렵 누가 그의 막내 딸이 살아있다고 말해줘서 놀랐다.그러나 2010년 이후 울산에서도 그를 기억하는 모임이 생겨난 것이 늦었지만 바람직한 일이라 생각했다. 좌파 독립운동가에 대한 국가의 공식 인정이 우리가 넘어야 할 큰 산이다. 이것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다. 한가지 더, 이번의 조선 정판사 위폐 사건처럼 미군정 시기 미군정이 진행한 공안탄압 조작 사건은 별도로 조사가 필요하다. 우리는 당시 군사 재판 기록 등이 남아있는지도 제대로 알지 못한다. 화순탄광 사건, 대구 10월 항쟁 사건 관련자 재판도 모두 미군정 시기에 발생한 것인데, 잔화위 시기 이에 대해 접근하려고 약간 시도했으나 미국 협조 등이 필요할 것 같아서 불발로 그치고 말았다. 그런데 주권이 미국(미군정)에 있던 시기에 발생한 조작 국가폭력 사건은 과연 대한민국이 피해자에 대해 사과나 보상을 해야 하는가? 이것도 당시 나의 고민거리였다. 제국인 미국은 기록에 철저하기 때문에 아마 관련 재판 기록을 갖고 있을 것이다. 우리의 한국 현대사 인식에 빈구멍이 너무 많고 법적 책임과 관련된 쟁점도 많다.“ *** 원산 총파업 지도자인 저명한 노동운동가였던 이주하도 남로당 계열이라 해서 이관술과 같이 처형 학살되었습니다. 우리 역사의 빈구석이라 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1929년 발생한 원산총파업은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의 노동쟁의로, 이를 이끌었던 핵심 조직은 **원산노동연합회(원산노련)**였습니다. 당시 파업을 주도한 주요 지도자들과 노동운동가들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주요 지도자 * 김경식 (金瓊植): 원산노동연합회의 집행위원장으로, 파업 초기부터 조직을 진두지휘했습니다. 파업이 격렬해지자 일제 경찰에 의해 가장 먼저 체포되었으며, 이는 지도부 공백의 원인이 되기도 했습니다. (후에 친일파로 변절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 김태영 (金泰榮): 김경식이 구속된 후 위원장 대리를 맡아 파업을 이끌었습니다. 변호사 출신으로 사회운동에 관심이 많았으나, 일제의 강력한 탄압과 자금난 속에서 후반기에는 다소 타협적인 태도(투항주의)를 보였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 이주하 (李舟河): 원산 지역의 대표적인 사회주의 노동운동가입니다. 파업 당시 직접적인 지도부 명단에는 잘 드러나지 않으나, 지도부가 검거된 후 조직을 재건하고 비합법 적색노조를 결성하는 등 1930년대 원산 노동운동의 핵심 인물로 활동했습니다. * 박태선: 파업이 실패로 끝난 후인 1929년 말, 무너진 원산노련을 재정비하기 위해 선출된 신임 집행위원장입니다. 2. 원산총파업의 핵심 조직: 원산노동연합회(원산노련) 이들은 단순히 임금 인상만을 외친 것이 아니라, 체계적인 조직력을 바탕으로 일제와 자본가에 맞섰습니다. * 결성: 1925년 원산 지역의 직업별 노동조합들이 연합하여 결성. * 규모: 약 2,200여 명의 노동자가 가입된 거대 조직. * 투쟁 방식: 파업 기금을 모으기 위해 전 조합원이 **금주(禁酒)**를 결의하고 매일 5전씩 적립하는 등 놀라운 단결력을 보여주었습니다. 3. 사건의 발단과 전개 파업은 1928년 9월 문평 라이징 선(Rising Sun) 석유 회사에서 일본인 감독이 조선인 노동자를 구타한 사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 발단: 노동자들이 감독 파면과 처우 개선을 요구하며 파업. * 확산: 회사가 약속을 어기자 1929년 1월 13일, 원산노련이 원산 전체에 총파업을 선언. * 결과: 일제의 군대 투입과 식량 차단, 지도부 체포 등 가혹한 탄압으로 인해 4월 6일 '자유 복업(업무 복귀)'을 선언하며 공식적으로 종결되었습니다. 원산총파업은 비록 패배로 끝났으나, 노동자들이 계급적으로 각성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이후 1930년대 항일 노동운동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더 궁금하신 점이 있다면, 당시 파업의 구체적인 요구 조건이나 국제적인 연대에 대해 설명해 드릴까요? 원산총파업의 역사적 의의 https://youtu.be/_khNb5nkwGg?si=vnIXgjXqQyoahOsQ 이 영상은 일제강점기 최대 규모였던 원산총파업의 발생 배경과 전개 과정을 알기 쉽게 설명해 줍니다. **** 연변작가 고 김학철 선생의 저전소설 <<격정시대>> 를 보면 서울의 고등학생으로 이에 자극을 받아 원산으로 향한다는 대목이 있었죠. 맞습니다! 김학철 작가의 자전적 소설인 **《격정시대》**에는 주인공(작가 자신)이 경성(서울)에서 보성고보를 다니던 시절, 원산총파업 소식을 듣고 뜨거운 피가 끓어올라 원산으로 향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되어 있습니다. 당시 지식인 청년들에게 원산총파업이 어떤 의미였는지, 그리고 작가 김학철의 삶과 어떻게 연결되는지 정리해 드립니다. 1. 《격정시대》 속의 원산총파업 김학철 작가는 실제 1929년 원산총파업 당시 고등학생 신분으로 현장에 가려 했던 경험을 소설에 녹여냈습니다. * 민족적 각성: 당시 경성의 학생들에게 원산은 단순히 노동자들이 싸우는 곳이 아니라, **'일제에 맞서 조선 사람이 당당히 제 목소리를 내는 해방구'**처럼 인식되었습니다. * 행동하는 지성: 소설 속 주인공은 신문 호외를 보며 가슴 고동을 느끼고, "노동자 형제들이 굶주리며 싸우는데 책상 앞에만 있을 수 없다"며 원산행 기차에 몸을 싣습니다. 이는 당시 청년들이 가졌던 '노동자에 대한 연대감'과 '항일 의지'를 상징합니다. 2. 김학철, '조선 의용대'의 마지막 분대장 원산에서의 경험과 그 시대의 공기는 김학철을 평범한 학생에서 치열한 혁명가이자 작가로 변모시켰습니다. | 시기 | 주요 활동 | |---|---| | 1930년대 | 원산총파업 등의 영향으로 사회주의 운동에 투신, 이후 중국으로 망명. | | 항일 투쟁 | 조선 의용대에 가입하여 태항산 전투 등에서 일본군과 직접 교전. | | 부상과 투옥 | 전투 중 다리에 총상을 입고 일본군에 포로로 잡혀 한쪽 다리를 절단한 채 투옥 생활. | | 전후 활동 | 중국 연변에 정착하여 《해란강아 말하라》, 《격정시대》 등 굵직한 문학 작품 남김. | 3. 왜 원산총파업이 그를 움직였을까? 김학철 작가가 작품에서 강조했듯, 원산총파업은 단순한 임금 투쟁을 넘어선 **'정신적 사건'**이었습니다. * 철저한 단결: "술을 끊고 밥을 굶으면서도 굴복하지 않는다"는 원산 노동자들의 결기가 청년 김학철에게 깊은 감명을 주었습니다. * 국제적 연대: 당시 소련, 중국, 일본의 노동단체들로부터 격려 전문과 성금이 답지했는데, 이는 어린 학생들에게 조선의 독립과 노동 해방이 세계적인 흐름 속에 있음을 깨닫게 했습니다. > "역사는 반복되는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뜨거운 심장들에 의해 이어지는 것이다." > — 김학철 작가의 문학 세계를 관통하는 정신 > **** 님 웨일즈작 <<아리랑>>의 김산(실명 장지락)도 원산 총파업의 영향을 벋지 않았나? 네, 정확한 지적입니다. **님 웨일즈(Nym Wales)**의 저서 **《아리랑 (Song of Ariran)》**의 주인공인 김산(본명 장지락) 또한 1929년 원산총파업을 목격하거나 그 소식을 접하며 깊은 영감을 받은 인물 중 한 명입니다. 김산과 원산총파업의 연결 고리는 다음과 같이 정리할 수 있습니다. 1. 《아리랑》에 나타난 원산총파업의 의미 김산은 님 웨일즈와의 인터뷰에서 원산총파업을 "조선 노동계급의 가장 위대한 투쟁 중 하나"로 평가했습니다. * 심리적 자극: 당시 중국에서 혁명 운동에 투신하고 있던 김산에게 고국에서 들려온 원산 노동자들의 단결 소식은 큰 고무가 되었습니다. * 계급 투쟁의 상징: 그는 원산총파업이 단순한 경제적 투쟁을 넘어, 일본 제국주의의 근간을 뒤흔드는 정치적 항쟁으로 발전했다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2. 김학철과 김산의 평행이론 질문하신 내용처럼 김학철과 김산은 여러 면에서 닮아 있습니다. * 학생들의 각성: 김학철이 《격정시대》에서 묘사했듯, 당시 학생들은 원산총파업을 보며 '지식인의 책무'를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김산 역시 젊은 시절부터 이와 유사한 민족적, 계급적 울분을 느끼며 혁명의 길로 들어섰습니다. * 현장으로의 투신: 김학철이 원산으로 향하려 했던 것처럼, 김산은 더 넓은 투쟁의 현장인 중국 대륙으로 향해 조선의용대 등에서 활동하며 직접 총을 들었습니다. 3. 당시 지식인들에게 원산은 무엇이었나? 1929년의 원산은 단순히 지리적인 도시가 아니라 **'희망의 상징'**이었습니다. * 국제적 연대: 김산은 《아리랑》에서 원산총파업이 전 세계 노동자들의 지지를 받았던 점을 강조하며, 조선의 독립 운동이 고립된 싸움이 아님을 역설했습니다. * 철저한 조직력: 지도부가 체포되어도 무너지지 않았던 원산노련의 조직력은 김산과 같은 혁명가들에게 조직론의 모범 사례로 연구되기도 했습니다. 김산은 비록 원산 현장에서 직접 파업을 지도한 인물은 아니었지만, 그 사건을 통해 **"노동자가 주인 되는 세상이 곧 독립된 조국의 모습"**이라는 확신을 더욱 굳히게 되었습니다.
아직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