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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창 선생- 채형복 시인/교수 부고에 붙여
2026년 1월 26일 오전 12:12 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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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창 선생의 글 ] 채형복 시인이 아까운 나이에 세상을 떴다는 소식을 듣고 예전에 그의 시집에 썼던 발문을 들춰보았다. 그는 가슴이 따뜻한 시인이자 법학자로 언제나 가난하고 약한 이들의 편에 서서 세상을 바라보고 부지런히 글을 썼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시적 정의’와 ‘시적 진실’을 향한 끝없는 도전 1 내 기억에 법대 출신의 작가는 많지 않다. 한국문단에서는 소설가 최인훈과 조성기, 성석제 등의 이름이 떠오르는 정도다. 괴테는 법학을 공부하여 변호사로 잠시 활동했다고 하지만, 『파우스트』를 비롯한 그의 문학세계는 겉으로 보기에는 법과 아무런 관계도 없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소송』이나 『심판』, 『성』 같은 카프카의 문제작들은 그가 법학을 전공하지 않았더라면 씌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미국의 대중 작가 존 그리셤은 법대를 나와 변호사로 활동하다 『레인 메이커』, 『타임 투 킬』, 『의뢰인』 등 법정 분쟁을 다룬 베스트셀러 소설들과 이를 각색한 영화를 통해 괴테와 카프카의 독자를 합친 것보다 훨씬 많은 관객을 영화관으로 불러들였다. 그의 소설과 영화가 대중적 인기를 끈 것은 사회적 약자들이 양심적인 법관이나 변호사의 도움을 받아 악덕 기업이나 권력자를 물리치고 정의를 실현한다는, 전통적인 권선징악의 원칙에 충실하기 때문이다. 카프카의 소설들이 법의 비인간적인 속성을 무서울 정도로 적나라하게 드러냄으로써 독자를 불편하게 한다면, 그리셤의 소설에서는 현실과는 달리 사법적 정의가 승리를 거둠으로써 정의에 목마른 독자나 시청자는 편안하게 대리만족을 느낄 수 있다. 채형복 시인은 법대를 나와 프랑스에서 공부한 법대 교수인데, 내가 아는 법대 출신의 유일한 시인이다. 고등학교 시절부터 시를 써온 채형복 교수가 소설가가 아닌 시인의 길로 들어선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어찌 보면 그가 시를 쓰는 것은 자신의 전공인 법학과 아무런 내적 필연성이나 동질성이 없는 별도의 세계에서 일종의 여가활동이나 취미생활을 하고 있다는 오해를 받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연한 기회에 나는 그가 문인들의 필화사건에 관심을 가지고 전문적인 연구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몇 차례 만나 이야기를 해보니 그는 법조문의 테두리 안에서만 세상을 해석하고 재단하는 답답한 법률가가 아니라 표현의 자유나 인권에 대한 뜨거운 관심과 예민한 감수성을 가진 시인이었다. 뒤늦게 『바람이 시의 목을 베고』라는 그의 6번 째 시집을 읽고 나는 그가 취미로 시를 쓰는 법대 교수가 아니라 모순된 현실 앞에서 온몸으로 분노하고 좌절하고 아파하는 시인이라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그는 실정법이라는 지상의 척도보다 진실과 양심과 자유라는 시의 척도를 따르는 시인이었다. 내가 만나본 법관이나 법학자들은 대체로 법이 만들어진 목적, 이른바 입법취지나 법철학에는 관심이 없고 언제나 실정법의 조문을 축조적으로 해석하여 기득권자들에게 유리하도록 법을 적용하는 데만 능숙한, 법의 하수인들이었다. 이런 법관이나 법학자들의 한계를 의식하고 뛰어넘은 자만이 작가나 시인이 될 수 있을 터인데, 그런 경우가 드문 것은 그들이 남들이 하는 대로만 따라 하면 충분히 먹고살만한 특권을 누리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런 점에서 채형복 시인은 이미 법률가 동네(법조계)의 비주류에 속하는 이단아라 할 수 있다. 채형복 시인을 나는 동네 이웃으로 만났다. 그전에도 같은 대학의 교수로 학교 안에서 몇 번 마주쳤겠지만 그를 제대로 알게 된 것은 한참 시간이 지나 그가 경북대로 직장을 옮긴 다음이었다. 알고 보니 그는 우리 동네의 길 건너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앞의 시집이 나오기 얼마 전 채교수는 이산하 시인의 문제작 「한라산」을 주제로 북콘서트를 하는데 나더러 토론자로 참여해달라고 부탁을 해왔다. 덕분에 나는 그가 복사해준 장시 「한라산」의 원고와 함께 이산하 시인의 절집순례기인 『피었으므로 진다』도 읽었고, 4·3사건에 대해서도 새삼스럽게 공부를 하게 되었다. 서가를 뒤적거리다보니 「한라산」이 실린 『녹두서평』 창간호(1987)도 발견하였다. 이에 자극을 받아 김석범의 대하소설 『화산도』에 도전하여 한 달 동안의 고투 끝에 12권을 독파하는 데 성공하였다. 채 교수는 인터넷 매체에 연재한 필화사건들을 묶어 『법정에 선 문학』(한티재, 2017)이라는 단행본을 출간했다. 여기서 그는 법조문 속에 갇힌 정의가 아니라, 법조문의 근거가 되고 법조문보다 포괄적인 정의, 문학적 상상력에 의해 실현가능한 보다 근원적이고 존재론적인 정의, 즉 ‘시적 정의’를 내세운다. 미국의 법철학자 마사 누스바움이 제시한 ‘시적 정의’를 ‘궁핍한 시대’의 시인이자 법학자인 채형복 교수는 우리 현대문학사에서 국가보안법의 용공이적 혐의로 기소된 4편의 작품(남정현의 소설 「분지」, 김지하의 시 「오적」, 양성우의 시 「노예수첩」, 이산하의 시 「한라산」)과 음란성 시비로 필화를 겪은 3편의 작픔(염재만의 소설 「반노」, 마광수의 소설 「즐거운 사라」, 장정일의 소설 「내게 거짓말을 해봐」)에 적용하여 ‘문학적 재판관’ 또는 ‘시인 재판관’의 입장에서 작품을 변호한다. 채 교수가 이산하 시인을 초청하여 북콘서트를 열고 『법정에 선 문학』을 펴낸 것이 계기가 되어, 1987년 발표 당시 시인과 출판사의 자기검열을 거치면서 손상된 이산하의 『한라산』이 최근 원래의 모습으로 복원되어 출판되기에 이르렀다. 『화산도』와 『한라산』은 다같이 4·3문학의 지평을 확장하고 심화하는 데 크게 기여했고, 두 작품의 출판은 우리의 70년 분단문학사에서 표현의 자유를 향한 노정의 중요한 고갯마루로 기억될 것이다. 그리고 채형복 교수의 『법정에 선 문학』은 분단시대의 실정법에 의해 손상된 ‘시적 정의’를 세우는 일에 크게 기여했다고 나는 믿는다. 2 시집 『칼을 갈아도 날이 서지 않고』의 시편들을 읽으며 나는 열정적인 시민운동가이자 인권법학자인 채형복의 얼굴 뒤에 숨겨져 있던 시인 채형복의 본모습을 엿보게 되었다. 그는 어려서부터 공부를 잘해 수재 소리를 들으며 일류대학 법대를 나와 출세가도를 달려온 모범생과는 거리가 멀다. 우리는 촛불혁명을 거치면서 이런 일류대학 출신의 수재형 법관들의 흉측한 민낯을 지겹도록 보아왔다. 학창 시절의 채형복은 가난하고 반항적인 외톨이였던 모양이다. 그렇다고 소싯적부터 백일장에서 상을 휩쓸던 ‘글짓기 선수’는 아니고 그저 가끔씩 생각나는 대로 노트에 무언가를 끼적거리던 ‘문청’이었던 것 같다. 그는 대학에 자리를 잡은 후에도 보직이나 정치권을 기웃거리는 이른바 폴리페서의 길을 외면하고 교육 민주화를 위해 교수회 활동에 헌신하면서 유럽통합 관련법이나 인권법 분야의 전문가로 왕성한 학내외 활동을 해왔다. 그러면서 ‘법과 문학’ 같은 교양과목을 개설하여 법대 학생들에게 인문학적 교양을 심어주고 ‘시적 정의’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려 노력하고 있다. 보통의 법대 교수들과는 다른 채교수의 이런 성향은 가난하고 반항적인 외톨이 문학청년 시절에 이미 그의 몸속에 내장되어 있었던 것 같다. 가령 「바람」이라는 시를 보면 그가 왜 평범하고 행복한 법률가의 길을 가지 않고 방황하고 고뇌하고 아파하는 불행한 시인의 길로 접어들었는지 짐작할 수 있다. 아직도 ‘문청’의 순수한 풋내를 간직하고 있는 이런 시를 ‘문예장학생’이나 문창과 출신의 솜씨 좋은 시인들은 죽었다 깨나도 쓸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이 써내는 난해하고 세련되고 고답적인 시들이 과연 이 시만큼의 감동을 줄 수 있을까. 바람의 집은 어디일까 나는 아직도 큼큼한 곰팡내 절은 의문에 답하지 못하였다 청춘의 푸른 시간을 연비(燃臂)로 불태우고도 텅 빈 가슴을 헤집고 지나는 허무를 잡지 못하고 투명유리로 가린 하늘의 신을 두드리고 패고 가시덤불에 온 몸 던져 뒹굴고 절규하며 기도했건만 바람의 출생 비밀은 풀지 못하고 고향도 알아내지 못하였다 봄바람이 코끝을 스치며 유혹하지 않았다면 봄꽃에 쉬 다가가지 못하는 중력 잃은 나비의 날개 짓을 보지 않았다면 헤매지 않았을 것이다 아파하지 않았을 것이다 아주 행복했을 것이다 사시사철 바람이 불지 않은 날은 없고 아직 나비의 행방도 찾지 못하였지만 나는, 오늘도 헤매고 아파하고 조금은 행복하고 싶다 ―「바람」 전문 바람의 집과 고향이 어디인지 궁금해 하고, 바람의 출생비밀을 알려고 하는 자, 여전히 “텅 빈 가슴을 헤집고 지나는” 허무에 휘둘리고, 때로는 "투명유리에 가린/ 신을 두드리고 패는” 자는 시인이 될 수밖에 없다. 사물과 존재의 근원을 향한 부단한 질문과 추구가 바로 시인의 천성이기 때문이다. 시인을 끊임없이 고통스런 창작의 길로 몰아세우는 것은 바로 이러한 ‘시적 진실’에 대한 갈증이다. 작품에서 법의 문제를 직접 다루지 않은 최인훈과 괴테가 창작을 통해 추구한 것도 이러한 ‘시적 진실’이라고 나는 믿는다. 괴테의 『시와 진실 Dichtung und Wahrheit』은 작가의 자전적 삶의 내력을 시대와의 연관 속에서 문학적으로 서술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최인훈의 『화두』도 그가 ‘남북조시대’라 명명한 분단시대를 헤쳐온 실향민의 고단한 삶의 역정과, 시대적 문제를 외면하지 않고 천착한 양심적 지식인의 사색을 문학으로 육화시킨 작품이다. 나는 두 작가가 그들의 문학(독일어의 ‘Dichtung’은 시라는 뜻과 함께 문학이라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에서 평생 추구하고 씨름했던 화두가 바로 ‘시적 진실’, 혹은 ‘문학적 진실’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점에서 법학자 채형복 교수가 추구하는 ‘시적 정의’는 시인 채형복이 추구하는 ‘시적 진실’을 동력으로 삼고 있으며, ‘시적 진실’은 ‘시적 정의’를 향한 에너지의 원천이라고 할 수 있다. 때로는 세파에 떠밀려 실족을 하여 길바닥에 나뒹굴고 상처를 입기도 하는 시인의 천명을 담담하게 받아들여 대지에 발붙이고 살아가는 시인은 겸손하면서도 의연하다. 이런 경지에 들면 시마저도 별거 아닌 것으로 여겨지는데, 역설적으로 이런 깨달음이야말로 진정한 ‘시적 진실’이 아니고 무엇인가. 바람이 다리를 걸었어 다리를 잃은 발은 두둥실 허공에 매달려 등신 춤을 추고 구름 기둥도 잡지 못한 팔은 두 손을 잃고 무너져 내렸어 무너지고 떨어지면서 알았어 지수화풍 허무하게 사라질 몸이 얼마나 무거운지 작은 돌멩이가 파고든 생손의 종기가 얼마나 아픈지 길바닥에 엎어지고서야 알았어 하늘은 왜 저리도 눈 시리도록 파란지 땅은 왜 이리도 포근한 품을 가졌는지 이제는 알 것 같아, 어찌하여 각박한 세상은 늘 사랑으로 빛나고 시가 없어도 온 천지는 시심으로 가득한지 ―「실족」 부분 이 시집의 표제인 「칼을 갈아도 날이 서지 않고」를 보자.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야반도주한 아내에게 복수할 일념으로 칼장수가 된 어느 남자의 이야기를 안다. 도시에서 도시를 산골에서 산골을 떠돌며 남자는 배신감에 젖은 눈물로 숫돌에 칼을 갈고, 증오에 불타는 적의로 칼날을 세웠다. 아무리 무딘 칼도 그의 손을 거치면 서슬 푸른 검광이 되살아났다. 어찌 이렇게 칼을 잘 가느냐는 질문에 그는 짤막하게 대답했다. 도망간 아내의 목을 벨 작정으로 칼을 간다오. 해가 갈수록 그의 칼 가는 솜씨는 예리해졌지만 아내의 종적은 찾을 수 없었다. 오랜 세월이 흘러 고향 사람이 물었다. 아직도 아내를 찾아다니는지, 복수의 칼을 가는지. 텅 빈 하늘을 스쳐 지나가는 겨울바람의 목소리로 그가 말했다. 아내는 잊은 지 오래 되었으나 복수는 잊은 적 없소. 그런데 말이요. 언제부턴가 아무리 열심히 칼을 갈아도 도무지 날이 서지 않소. 날이 서지 않는 칼로 어찌 복수를 하겠소. 아직도 나는 아내를 사랑하는가 보오. ―「칼을 갈아도 날이 서지 않고」 전문 “외간 남자와 눈이 맞아 야반도주한 아내에게 복수할 일념으로 칼장수가 되”어 복수의 칼을 갈던 사내가 “언제부턴가 아무리 칼을 갈아도 도무지 날이 서질 않”아 결국 복수를 포기한다는 이야기를 담은 이 시는 행간에 은밀한 메시지를 숨기고 있다. 이를테면 세상의 부조리와 배신을 응징하려고 시의 칼을 날카롭게 갈던 시인도 세월이 흐르다보면 달아난 아내처럼 이 더럽고 아름다운 세상을 아직도 사랑한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그렇게 되면 날이 서지 않는 무뎌진 칼날로 세상을 찌를 수는 없게 된다. 시인은 증오와 복수보다는 사랑과 포용으로 기울고 있다. 나이가 들어 몸이 말을 듣지 않고 세상만사가 마음먹은 대로 움직이지 않는다는 것을 몸으로 겪은 다음에야 우리는 가까스로 이런 마음의 자연스런 기울기를 수용하게 된다. 나는 이렇게 멋대로 해석하였지만 읽는 이마다 다르게 해석할 여지를 이 시는 열어두고 있다. 가족에 대한 애틋한 정을 담은 몇 편의 시도 눈에 들어온다. 가령 「정구지전 한 넙데기」와 「밥은 먹었냐」는 무뚝뚝하던 아버지와 잔정 넘치던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하고 있다. 배가 출출하고 목이 칼칼하여 막걸리 한 사발 생각나면 아버지는 대뜸 며느리에게 명령하듯 말했다 야야〜정구지전 한 넙데기 부치래이 평생 여보, 당신 하지 못하고 어〜이라고 부르며 천생 경상도 사내로 산 아버지는 며느리를 부를 때도 차마 며늘 아가, 애미야 부르지 못하고 야야〜3인칭으로 불렀다 ―「정구지전 한 넙데기」 부분 밥은 먹었냐? 엄니는 온돌방 아랫목에 묻어둔 놋쇠그릇에 담긴 하얀 쌀밥에 동치미 한 그릇 차려주곤 하였다 투명한 살얼음으로 되살아나는 잇몸 시린 엄니의 동치미 사랑 ―「밥은 먹었냐」 부분 그리고 「고백」과 「마지막 사랑으로」, 「해로」는 병이 든 아내에 대한 애정을 직설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나는 이런 소박한 시편들이 좋다. 돌아가신 부모를 그리는 자식의 추모에는 모름지기 간절함이 있어야 하고, 나이 들어 병치레하는 조강지처에게 건네는 지아비의 언사에는―특히 아버지를 닮아 육친에게 살가운 말을 자주 해주지 못한 경상도 사내의 경우에는―낯간지러울 정도의 솔직한 애정표현도 흠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맨땅에 헤딩하듯 시작한 프랑스 유학 시절 처음 얼마 동안은 말도 통하지 않고 돈도 떨어져 막막했는데 그래도 고비를 넘겨 공부를 마칠 수 있었던 것은 부인의 따뜻한 격려와 내조 덕분이라고 채형복 시인은 털어놓은 적이 있다. 그가 아직도 동안인 것은 이런 소박한 시를 쓸 수 있는 순정한 시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3 채형복 시인은 최근에 시내의 아파트 생활을 청산하고 팔공산 자락의 전원주택으로 이사를 했다. 차분하게 집터를 고르고 부부의 취향에 따라 설계를 하여 꼼꼼하게 지은 집은 주변의 지세와 잘 어울려 아늑했다. 무엇보다 창밖으로 보이는 팔공산 능선이 이 집의 자랑이었다. 오래 꿈꾸어왔던 전원생활을 시작한 채 시인은 아궁이에 불을 때고 텃밭을 가꾸느라 쉴 틈이 없다면서 소년처럼 행복한 표정을 지었다. 물론 시인으로서의 채형복이 마냥 즐겁고 행복한 것만은 아니다. 「모르겠다」에서 보듯이 평생 책을 읽고 분주하게 길을 헤매고 다녀도 진정한 ‘나’와 마음 편히 쉴 수 있는 안식은 쉽게 찾을 수 없다. 그리고 심혈을 기울여 힘겹게 써내는 시도 커피 한 잔 값보다 못한 대접을 받을 때도 있다(「커피 한 잔 값보다 못한」). 세상이 아픈데 시인 혼자만 편안하기를 구할 수는 없고, “현실이 아픈데도/ 내 시는 아프지 않고// 시가 슬픈데도/ 현실은 슬프지 않은”(「외면」) 이율배반은 쉽게 해소되지 않는다. 그러므로 시인은 “혁명의 뜨거운 열기에 들뜬/ 군중의 거센 함성과 횃불마저/ 가슴 시린 고독으로 내려앉은” 광장과 “눈물 메마른 도시”(「길」)를 떠나 잠시나마 세상의 번잡으로부터 숨고 싶은 소망을 얼핏 드러내기도 한다. 가진 자의 절망과 가지지 못한 자의 분노가 뒤엉켜 거대한 해일의 무리되어 진군하는 숨 가쁜 함성에서 비켜나 성난 군중의 눈에 띄지 않는 초라한 판잣집이 드리운 그늘로 마른 땅에 잦아드는 목마른 봄비처럼 기척 없이 스며들고 싶어 ―「은둔」 부분 그러나 그가 소망하는 것은 세상사와 단절된 궁벽하고 외진 산골의 유원감(悠遠感)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뜨거웠던 현장의 열기를 잠시 식히고 가라앉혀 보다 깊고 넓은 사색으로 ‘시적 진실’과 ‘시적 정의’, 혹은 ‘시적 자유’를 탐구하려는 지도 모른다. 그는 진작부터 준비해온 아나키즘에 관한 책을 마무리지어 곧 세상으로 내보낼 계획이라고 한다. 시집 첫머리에 실린 「경칩」을 읽으며 나는 팔공산 자락의 은거지에서 모처럼 어렸을 적의 봄꿈에 젖어 있는 시인의 안온한 오후 한나절을 떠올렸다. 물론 이런 안온함은 겨울의 찬바람과 추위를 겪은 다음에 주어진 조촐한 보상일 뿐이다. 이 시집이 채형복 시인과 그 가족은 물론이고 주변의 마음 가난한 독자들에게 따뜻한 위안이 될 것이라 믿는다. 나른한 햇살 쏟아지는 대청마루 섬돌 위 온몸 돌돌 말아 똬리 틀고는 늙은 고양이 곁에 바짝 붙어 겨우내 곤한 잠을 잔다 나는 시간의 입술이 잊은 그렁그렁 눈물 젖은 사랑의 맹세 존재의 바람이 할퀴고 지나간 아물지 않은 고해의 상흔 아무리 기다려도 부끄러운 내 모습 가려줄 어둔 밤은 오지 않고 마구간에 걸린 가마솥에서 끓는 소죽 냄새에 해거름 허기지는 오후 툭 투득 툭 앞마당 개울가의 갯버들 망울 터지는 천둥소리에 숨죽이고 새 생명 기다리던 계절의 심장이 철렁 내려앉아 졸음 겨운 새봄마저 깜짝 놀라 화들짝 깨어나는 날, 경칩 우화하지 못한 은자 홀로 여태 꿈속이다 ―「경칩」 전문 **** 부고 기사 https://bit.ly/4t0GbK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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